2019년
'나는 읽기 쉬운 맘이야
당신도 쓱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옛날 감성의 이 곡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고,
잔나비라는 밴드에게 관심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듣고 또 듣고
계속 듣다가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법,
언제나 그랬듯이
또 다른 인기있는 곡으로 갈아타기를 했었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어서
다들 집콕 모드였었고,
영화, 뮤지컬, 콘서트 같은 공연이 멈춰있던 시기여서
TV에서 유명가수의 지난 콘서트 실황을 방영해줬다.
심심하던 차였고,
마침 신랑이 65인치 TV와 사운드바를 질러서 설치한 상태였고,
윗집의 층간소음에 스트레스를 받던 차,
에라 이때다, 복수다 싶어
사운드바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키워서
잔나비의 콘서트 실황을 보게 됐다.
콘서트명 "판타스틱 올드 패션드"로 기억한다.
그 곳에서 난 그들의 매력에 완전 빠졌다.
그 이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만 들었던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잔나비의 모든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매일매일 듣고 또 들었다.
이런 주옥같은 곡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장르가 다양해서,
생각해보면 노래를 먼저 들었다면
대중적이지 않아서 별로 당기지 않았을 곡들까지
콘서트를 보고 났더니
모든게 다 좋았다.
하나도 버릴게 없었다.
당장 콘서트를 가고 싶다는 열망이 불타올랐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불가능했고,
코로나 시국은 예상보다 길었고,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다시 시들해졌다.
2025년
아주 오랫만에 잔나비의 새 정규앨범이 나왔다.
"사운드 오브 뮤직"
앨범 발매일에 맞춰놓고
새 앨범의 모든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놓고
듣고 또 들었다.
그러면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몇년전에 접했던 콘서트 실황이 생각나서
잔나비 팬은 아니지만 그들의 노래는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예약할테니 같이가자"고 꼬셨고,
피켓팅이 예상되는 콘서트라서
"너가 예약한다면 갈께. 할 수 있으면 해봐"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들의 반응에 의욕이 불타서
예약 시간 초단위로 대기했다가
결국 스탠딩 제외, 좌석 기준으로 앞줄에서 5번째자리로
예약에 성공했다.
콘서트명 "모든 소년 소녀들"
3시간 넘는 시간동안,
팔이 아픈 줄 모르고 흔들고
다리가 아픈 줄 모르고 서서 뛰고
노래란 노래는 다 따라불렀다.
너무 신나고 말도 안돼는 경험이었다.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시기에
잔나비의 활동들이 궁금해졌다.
어떤 방송에 출현하는지,
어떤 페스티벌에 출현하는지,
어떤 대학축제에 출현하는지,
그들의 모든게 궁금해져서,
어떻게 하면 사전에 그런 일정을 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팬카페까지 가입하게 되었고,
거기서 접한 소식을 통해,
TV에 나올때마다 예약해놓고 봤고,
콘서트 때 줄이 너무 길어서 못샀던
슬로건도 구입하고,
잔나비가 출현하는 모모콘도 응모했는데,
또 이게 당첨되서 공연도 보러가고,
인스타 팔로우 알림설정을 해놓고
라방도 보고,
사진과 영상 올라오는건 수시로 보고
아카이빙북까지 구입했다.
2026년
자칭 덕질의 끝판왕은
오대산 월정사 공연이었다.
이 또한 팬까페 통해서 일정을 사전에 확인했고,
참여 신청을 했고,
강원도에 사는 친구 집에 전날가서 자고
아침에 같이 갔는데,
세상에
바로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여기 저기 이동을 하는데,
바로 내가 앉은 자리 옆으로 와서
계속 노래를 부르는게 아닌가!!
황홀했다.
멀리서 보는 콘서트도 대만족이었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돼,
내 눈을 의심했고,
열심히 덕질을 한 나를 칭찬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한 친구는 이런 얘기를 한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도 열정이 있어야 하는건데,
난 연예인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해가 안가면서도
어쩔때는 그런 열정이 부럽다'
누군가를 아무런 댓가 없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난 또 아무 댓가 없이 그들의 영상을 보며 삶의 지루함, 외로움을 달래본다.